<기고>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개관 1주년에 즈음하여
- 시민 100인의 원탁토의와 이순신 정신!
이 충무공 탄신 474주년이 되는 해이다. 공께서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은 임란발발 15개월 전이다. 부임 후 예하 진영 초도순시를 마치고 왜의 침략에 대비한 전술토의가 연일 계속되었다. 주 내용은 도요토미가 이미 지시하여 건조한 2,000여척의 군함과 조총/사무라이 칼을 이용한 근접용병전술은 천하제일의 수준이라 이에 맞설 유일한 무기체계는 거북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든 장졸들과 과학자를 총동원, 심혈을 기울여서 거북선을 완성하였다.
짧은 13개월 동안에 가공할 무기체계의 명품완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충무공이 가진 리더십이라고 하겠다. 혼연일체의 집중력과 방향성은 4차 산업시대에도 잘 살펴볼 대목이다. 창의력과 효율성의 주요 포인트는 소통의 리더십인 것이다. 로또 당첨만큼이나 가능성 낮은 환경 속에서 전쟁사를 바꿀만한 강력한 무기체계가 탄생되었으니~. 그것도 하루라도 건조가 늦어져서 모든 제장들이 전쟁터로 치달았다면 아마도 중단되어 신기의 거북선은 결코 세상에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하루 전날 진수된 것은 신의 한수가 가미되었다고나 할까? 당시 조선정부의 전쟁준비는 소홀하였고 건조 다음날 700여척이 부산포에 이미 도착했다. 동래성과 경상좌·우수사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함락되었고 처녀 출전한 이순신의 수중에는 판옥선 24척이 고작이었다.
옥포해전을 앞두고 이 충무공께서는 부족한 전력에 낙심하지 않고 비장한 각오와 일체화된 정신전력으로 부하들에게 출전명령과 훈시의 내용(물령망동 정중여산, 勿令妄動 靜重如山,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에 전투 직전의 심정이 함축되어 있다.
옥포해전을 앞두고 “신께 기도했다”라고 기록한 대목에서는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전쟁을 준비하였다지만 24 : 700이라는 완전열세 전력에 대한 본능적인 중압감을 회피하지 않고 신의 섭리를 따를 것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비장한 모습은 거룩 그자체이다. 하늘도 감동하였다고 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준비된 숨은 무기가 있었으니 세상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거북선이 왜의 함대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백병전에 능한 왜군을 상대하기 위해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철갑과 쇠못을 부착하여 승선을 거부케 하므로 근접전에서 우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적의 불구덩이로 돌진하는 돌격전술은 백병전을 시도하려는 왜선 수척에 포위된 후에야 거북선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죽고자하면 살 것이다.” 이순신의 정신이 살아서 좌·우 현측과 용머리에 설치한 천·지·현·황 화포는 우레와 같은 화력으로 적선을 산산조각 내었다. 평저선으로 건조되어 종횡무진이 가능하고 목재 중 단단하다고 하는 적송인데다가 노 또한 바다를 향하고 있어서 충격에도 손상이 발생되지 않으니 귀선을 만난 왜적에겐 손쓸 방도도 없이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
3층 누각의 아래층에는 명령에 따라 노를 젓는 노군과 상층갑판에서는 화포와 화살사용이 자유롭도록 만들어서 1차 대전 당시 최초 출시되었을 때 괴물처럼 여겼던 장갑차의 형태인데다가 현대군함에 적용된 항해포술부와 기관부로 나누어 운영하는 모습은 과학기술과 전술진형에서 최신예 전투장갑군함이며 무적함대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하니 우군에게는 신나는 전투장면이지만, 적에게는 무서운 공포의 군함이 되어 거북이 모양의 귀선(龜船)이 적에게는 귀신(鬼神)의 귀선(鬼船)이 되었을 것이다. 수십 척의 적선과 수백 명의 적병은 죽어서 시체가 산을 이루는 데 우군에겐 피해란 찾아볼 수 없으니 가히 신이 내려준 병기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철갑거북선이 탄생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를 모으는데서 출발하였다.
얼마 전 이순신리더십 국제센터에서 시민 100여명이 모여 원탁토의를 한바 있다. 10여 명씩 조 편성을 하고 주어진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서 각 조마다 대표자가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시간이 갈수록 내 고장 진해의 문화예술발전에 대한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시·도의원과 학생에 이르기까지 참석자들은 방금 당선된 시장과 같이 말하고 정성된 소리들이 모이고 서로 다른 의견은 규합되고 정리되어지는 모습에서 이순신이 사용했던 소통의 장임에 틀림이 없다.
이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00분토론, 국회와 법원, 소원 수리함과 국민투표 등 민주제도가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국민의 소리가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꾸준한 노력도 좀 더 빠른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정서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100인의 원탁토의에서 희망을 본다. 참여시민 한마당의 소리는 해당공무원에게 신속히 전달될 것이다. 임란에는 이순신과 장졸들의 지혜가 살아 숨 쉬었듯이 시민이 바라는 창조문화와 예술 그리고 혁신이 살아 숨 쉬는 창원이 되어가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과거 40년 기계의 메카가 소통을 통해 4차 산업의 메카 창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 제독 강희승>
주요경력
-해군사관학교 졸업(’79∼’83)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정책과정(’10)
-국방대학교 안보과정(’10) 학생장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겸 진해특정경비지역사령관(’11)
-한국해양대학교 해양안보정책학 박사(’13∼’15)
(북극해 환경변화로 인한 한국의 해양안보정책 연구)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 (현)
-해양대학교 교수(현), 국방부 자문위원(현) 등